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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유학]Mr.HA의 체험기-워킹홀리데이 양공장 체험기

uhakpen 2011. 6. 23. 11:22

 

 

[호주유학]Mr.HA의 체험기-워킹홀리데이 양공장 체험기

 

 

 

(제가 그 동안 너무나 많이 쉬었죠? 워홀받아와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많이 바빴네요. 금년에는 워홀 도전기라는 제목으로 연재식으로 계속해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여러분에게 정보제공 이라기 보다는 그냥 스토리형식으로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작년 11월 말에 유급실습 끝내고 재계약이 불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시금 호주로 나와서 쉐프로로서 경력을 쌓기위해서는 비자를 다시 얻어야 했기에 내 나이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워킹홀러데이 비자를 얻기 위함이였다. 워킹비자를 얻고자 함도 있었지만 1년이상씩 가족들과 만나지 못한 것도 있어서 겸사겸사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가족과 2달간의 아름다운 휴식을 멀리하고 다시 시드니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웬지 기분이 묘했다. 설레임보다는 걱정반, 두려움반이랄까? 그것도 그럴것이 이제는 무엇을 배우러 가는 신분이 아니라 이젠 배운 기술을 가지고 실전에 나서서 내 스스로 경력을 쌓아가야 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도 어머니가 계속해서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출국 2주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나만보면 울음을 터트리시면서 너만보면 속이 탄다... 너무나 괴롭다면서 다시 생각을 바뀌고 한국에서 시작해 보지 않겠느냐며 계속해서 기대하지도 않은 언쟁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지만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시작한 요리사의길....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내가 더 작아질 수는 없었다. 나는 끝내 어머니를 설득시키고 다시 호주 비행기에 올라탔다.

 

2011년 1월 10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바라본 시드니의 하늘은 언제나 그랬든 온갖 걱정으로 인해 무겁고 어두컴컴한 내 마음과는 달리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도 잠시.. 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작년 11월에 일을 그만두고 손에게 칼은 놓은지 3개월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즌 빨리 세컨을 따고 본업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시드니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최대한 시드니에서 가깝고 세컨가능한 지역을 물색했다.  되도록이면 공장으로 가고 싶었다. 농장의 경우는 시즌을 타기때문에 잘못하면 대기시간이 너무나 길어서 적게는 1달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 횡재다냐~~ 아는 동생이 시드니 7시간 떨어져 있는 tamworth라는 양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찾던게 바로 이거다 싶어서 바로 행동으로 옮기려 했으나 동생 말이 이 지역은 한국 community가 활성화 되어있지 않아서 숙소해결이 어렵고 차량이 없으면 출퇴근에 어려운점이 많다는 거였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오일쉐어를 구해서 오라는 당부가 있었다. 나는 바로 한국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오일쉐어를 구한다는 정보를 올렸다. 그러나 3주가 넘도록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 이거 차량을 한대 구입해야 하나 마나 고민하고 있던 참에 구세주같은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오일쉐어를 구하고 있다고... 정보만 정확하다면 같이 가고 싶다고.... 나는 바로 오카이~~~ 싸인을 보내고 시드니 입성 한달만에 세컨을 따러 양공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새벽 6시 출발해서 오후 1시정도에 tamworth시티에 도착했다. 개인컨택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기에 바로 양공장 사무실에 가서 이력서를 보여줬더니 Job australia라는 에이전시에 가서 지원서를 받아오란다. 그래서 지원서 들고 바로 와서 개인신상을 마루 적고 있으려니 이게 웬 떡~~~ 갑자기 사무실 직원이 말하길..... 너네들 정말 운 좋다면서 너네들 3명이 오늘 들어왔는데 다음주에 딱~ 3명이 나가게 되어서 바로 다음주부터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나서 룰루 랄라 하면서 집으로 컴백홈 했다.

 

다음주 일이 배정되기전에 사무실에 와서 회사홍보 비디오와 여러가지 관련 자료를 보고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받게된 일배정... 실은 나는 내 동갑내기 신혼부부랑 같이 오게 되었는데 나랑 신랑되는 사람은 냉동창고에 가고 신부되는 사람은 보닝룸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양공장이던 소공장이던 크게 도살파트, 보닝룸파트, 냉동창고파트 이렇게 3부분으로 나뉘는데 보닝룸파트>냉동>도살 이런 순으로 일 강도가 정해져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도살파트에 안걸린것만으로도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근데 역시나 하루 8시간씩 하는 강행군,,,, 8시간씩 서서 적게는 10kg 많게는 30kg의 얼려있는 상자를 쉴새없이 나르는 작업이다보니 정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쯤이 되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원칙상 1시간 30분마다 5분씩 쉬고 3시간마다 아침, 점심을 먹을 시간을 주는거였지만 5분씩 쉬는것은 자기할일이 밀려있으면 엄두도 못내는 거였기에 정말이지 죽을 맛이였다.

 

도저히 이거는 아니다시퍼서 다른곳으로 옮겨갈려고 했더니 옆사람이 나한테 이런다.... 냉동파트나, 보닝룸파트에서 일하다가 못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도살파트로 보내던가 아니면 집에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신 황당 시추에이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일 그만두라면 그만둔다라는 심정으로 사무실 가서 보닝룸 수퍼바이저랑 면담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슈바가 알겠으니 그럼 내일부터 보닝룸으로 와서 일하란다... 이거 정말 황당.... 왜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알수없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그 다음날 배정받은 보닝룸파트에서 나는 칼을 쓰고 싶었지만 칼 쓰는 사람중에 비는 자리가 없다고 해서 일단은 다리패킹을 하라고 했다. 하루에 잡는 양의 마리수... 3000마리 이 말즉슨.... 내가 하루에 팩킹해야할 양다리수가 6000번이라는 것이다. 오마이~ 말이 쉽지 다리 팩킹하는 법도 나라별, 업체별로 달라서 하루에 6000번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양다리 책킹하다가 어깨패킹이 밀리면 가서 도와줘야했고 정말이지 공장은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공장이 고장나거나 그날 하루 물량을 다 채우기전까지는 인간들이 쉴 수 없으니 이거 참........

 

하루는 이런일도 있었다. 아침에 굿모닝~하고 슈바랑 인사를 마치자 마자 슈바왈~~~ "너 오늘 하루 도살파트가서 클리닝보이하고 와" 이게 무슨 말인가? 오늘 도살파트가서 일하라고? 이거 가기 싫다고 하면 슈바가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말 잘못했다가 아주 도살파트로 보내버리지는 않을까해서 그래... 그까지것 하루정도면 일해주고 오마 하고 갔다...... 그런데 가서 역시 이 세상에 인간들이 가장 잔인한 족속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왔다.

 

여러분들은 양공장에서 양을 어떻게 도살하는지 아는가? 일단 양을 공장안으로 연결되어있는 터널로 밀어넣는다.... 그러다가 공장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양머리가 보이자 마자 전기충격기를 머리속에 꽂아 놓으면서 기절 시킨다 그러면 그 옆에 사람이 칼로 목을 절반가량 자르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양뒷다리를 체인에 건다. 가장 역겨웠던 부분이 뭐였냐면 체인이 움직이면서 바닥에 피를 흘리기때문에 30분가량으로 그 피 흘리는 양밑에가서 배수구 속으로 피를 밀어넣어줘야 한다는 거였다. 안그러면 피가 굳어서 나중에 청소하기가 힘들기에..... 더 일하기 힘들었던 것은 앞서 말한대로 순간적인 전기충격을 가해서 기절시킨거였기에 나중에 체인에 묵인체 움직이다보면 정신이 돌아오면서 고통스럽게 몸을 뒤 흔든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이런 와중에 갑자기 양이 터널을 빠져나와서 도망치기라도 하면은 바루 나한테 소리를 친다... 도망못가게 빨리 잡아서 다시 이리로 끌고 오라고.... 살겠다고 도망치는 아이를 내 손으로 잡아서 목을 자르라고 갖다주는 셈이니 정말 너무나 못할 잣이였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역시 호주놈들은 무식하고 멍청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모습을 보게되었으니 그것은 양껍집을 맨손으로 wholeskin을 뜯어 내는데 와~~ 정말이지 좋게말하면 힘좋은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하다라는 말밖에 안나왔다. 우리 한국 사람같았으면 어떻게 해서즌 스킨벳기는 기계를 만들었을텐데 이놈들은 그냥 양손에 겨드랑이까지 물을 묻혀서 그 손을 살과 껍기 사이에 집어넣어서 벳기고 있는 실정이라니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뭐.... 이렇게 보면 내가 너무나 고생한것만 적어놓은 듯 하나 그래도 나름대로 뜻깊은 던 것은 시골지역이라서 사람들이 너무나 다들 친절했다는 것과 공장 시급이 $20.65 오버타임하면 $25.85정도 했으니 3개월해서 세금포함해서 $12000 벌었으니 뭐 고생만큼 그다지 나쁜 장사를 아니였다는 것이다.

 

지금 호주도우미 회원분들중에 이 공장에 대해서 관심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성심성의껏 정보제공해 드릴께요^^ 그럼 이만 총총총....